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이 겪는 위기는 과도한 관광선박의 접근만이 아닙니다. 9월 16일 발견된 돌고래 무리 중에는 꼬리지느러미가 완전히 잘려나간 야생 개체 ‘오래’도 같이 있었습니다. 꼬리가 없는 오래는 2019년 6월 처음 관광객이 발견해 영상을 촬영했는데, 보통 이런 경우 야생에서 오래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에 돌고래를 연구해온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에서 ‘오래’라고 이름을 붙이고 제주 바다에서 오래오래 생존하길 바라온 개체입니다. 오래는 꼬리지느러미가 잘린 단면 그리고 꼬리 없이 헤엄치는 법을 터득한 것 등으로 판단할 때 단시간 내에 잘려나간 것이 아니라 꼬리에 무엇인가 걸려서 서서히 장기간에 걸쳐 꼬리가 힘을 잃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물이나 낚싯줄 같은 것이 걸리면서 꼬리 부근 살을 조금씩 파고들면서 서서히 전체 꼬리지느러미가 절단된 것으로 보입니다.
돌고래에게 꼬리지느러미는 이동과 먹이활동 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인데, '오래'는 꼬리에서 나오는 추진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비틀며 헤엄치며 동료 무리들과 함께 이동하고, 사교행동을 하거나 먹이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3년 이상 꼬리 없는 야생 돌고래가 무리의 도움으로 함께 생존해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운데,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의 협력을 통한 공생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날 발견된 돌고래 무리 중에는 우리가 ‘턱이’라고 부르는 개체도 섞여 있습니다. 턱이는 입안에 어떤 조직이 자라나 비대해지면서 구강 구조를 변형시켜 턱이 휘어지게 된 남방큰돌고래인데, 해양포유류를 전문으로 하는 이영란 수의사는 이를 ‘악성종양’ 즉 구강암이라고 보인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조직검사를 통해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자세한 영상으로 볼 때 입 안에 암이 생긴 것으로 보이는 남방큰돌고래가 제주 연안에서 무리들과 헤엄치고 있는 것입니다.
스크류, 오래, 턱이 등 사고로 인해 장애가 생기거나 질병에 걸리는 돌고래들이 발견되기도 하는 것으로 볼 때 제주 남방큰돌고래 개체군은 현재 건강한 상태가 아닙니다. 무분별한 선박관광, 폐어구와 해양쓰레기 발생 그리고 연안오염으로 인해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은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선박관광, 해양쓰레기, 연안난개발과 해양오염 등의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처 일대에서는 선박관광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접근금지라인을 만들고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제주도가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하여 남방큰돌고래들이 서식처에서 최소한 쫓겨나지 않고 마음 놓고 거주할 권리를 주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돌고래와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돌고래와 공존하지 못한다면 임박한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생태적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돌고래의 위기는 우리 모두의 위기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선박관광 금지, 돌고래 보호구역 지정, 생태법인 도입 등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이 수립되길 기대합니다.(끝) |